벨기에가 두 개의 언어를 국가 공용어로 사용하는 까닭은?

언어 갈등으로 고통을 겪는 유럽의 십자로 : 벨기에는 유럽연합, 북서대양조약기구, 유럽원자력공동체 본부가 있어 유럽의 중심으로 불린다. 

벨기에 북쪽의 플랑드르 지방에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게르만계 사람들이, 남쪽의 왈롱 지방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주하여 벨기에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언어가 뒤섞여 있다. 

게르만계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60%, 라틴계 사람들은 약 30%를 차지하는데, 이 두 민족 사이의 언어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따라서 벨기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벨기에 국명부터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 각각 표기하며 학교에서도 두 언어 모두를 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국왕의 국회 연설, 공공 인쇄물과 거리 표지판은 물론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도 두 언어 모두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편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언어 사용자들 간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언어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생기는 대립과 갈등은 언어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뿌리가 깊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고대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벨기에는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북해와 지중해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유럽의 십자로와 같은 곳이다. 이런 이유로 고대부터 벨기에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세력이 충돌했다. 

초기 켈트족의 본거지였던 벨기에는 기원전 50년경 카이사르에게 정복되어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5세기경부터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세운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라틴계와 게르만계의 사람들이 섞인 5세기 무렵의 민족과 언어의 분포가 그대로 유지되어 벨기에는 전형적인 두 개 언어 국가가 되었다.

근대에 벨기에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북부에는 신교를 믿는 게르만계 네덜란드 사람들이, 남부에는 구교를 믿는 라틴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그런데 종교적인 대립으로 인한 남부의 라틴계 사람들의 불만이 팽배해졌다. 

1830년에는 남부 라틴계 왈롱 지방 사람이 중심이 되어 혁명이 일어났고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에 성공했다. 유럽의 주요국들은 1839년 런던 회의에서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영세 중립국이 된다는 조건으로 그 독립을 승인했다.

독립 과정에서 남부 라틴계 왈롱 지방 사람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또한 남부의 프랑스어는 북부의 네덜란드어를 압도해 나갔다. 산업 혁명 당시 석탄과 철강산지가 있는 왈롱 지방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북쪽의 게르만계 네덜란드 사람들의 불만이 높아져 갔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경제 발전의 무게 중심이 북부 지방으로 옮겨졌다. 북부 플랑드르 지방에서 식민지 콩고에서 유입된 금과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는 산업이 발달하고 석유 화학 산업과 같은 근대적인 공장이 세워지면서 빠르게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현재 벨기에의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곳은 북부지방이다.

오늘날 벨기에는 세계 10대 교역국의 하나로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으나 북부 위주의 성장이 지역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남부의 실업률은 북부 실업률의 두 배를 웃돌 만큼 경제 상황이 어둡다. 북부의 플랑드르 사람들은 “우리가 돈을 벌어 남부 왈롱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라며 볼멘소리를 내면서 분리 독립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모자이크 세계지리 - 이우평 지음/ 현암사 출판사]